10th My dream My prayer

2019. Gallery LA VERITA - Solo Exhbition

I am pumpkin so I am happy

 We are, all too often, caught up in the seemingly automated flow of everyday life. This flow is largely determined by practicality and time; we "flow" as guided by the requirements of productive existence. This includes not only the obligatory practical tasks of grocery shopping, working, and maintaining one's living environment, but also the tendency to ride the wave of linear time. Describing the result is itself almost a cliché--without even knowing it, we become numbed to the fact that we are gradually allowing essential parts of ourselves to atrophy, and becoming existentially doomed through lack of attention.

 Amongst the many cultural spaces art occupies, serving as a means of daily renewal of these atrophied aspects of ourselves is particularly (present) when viewing the works in Hyunjoo Choe's current exhibition, My Dream, My Prayer. We might first approach Choe's work by taking note of her overt preoccupation with the natural world. All of her paintings, in some way, take aspects of nature as their primary visual vocabulary, recrafting them in terms of size, context, and natural function. Eggs evolve into flowers, Spiderman bashfully courts Marilyn Monroe within the branches of a plum tree, and, in several cases, entire eco-communities thrive within suspended vessels. The coupling of her focus on nature with this displacement of natural function and law serves a dual purpose.

 First, it sways our attention away from the way in which we normally experience the world. Globally, we have very recently experienced a drastic change in the way we approach living our daily lives, the extent of which has yet to be determined. Limitations on social interaction have, and will continue to have a profound impact on our psychological well-being. While we may feel we are at times confined to physically small spaces, Choe’s work can serve as a reminder that we need not feel doomed by a lack of hope. Several of her works feature vibrant, detailed displays of life within an isolated, detached space. Happy Memory, in particular, reminds us that physical isolation in a small space need not involve relegating oneself to a monochrome existence lacking meaning. The painting features a farmhouse located on a small piece of land that is unto itself its own world. While there are pathways leading from the house, they lead nowhere; there appears to be no way to exit this small world. Yet, this small world does not appear to be inhibited by its size; there is no shortage of activity or life within this world. Disproportionately massive flowers shoot from the windows, the landscaping is detailed and impeccably maintained, while a picnic table, gazebo, and outdoor deck invite a prudent level of social gathering. The importance of such seemingly small things can often go unnoticed as we move through life; here, Choe calls for a renewal of what is obvious and meaningful.

 Second, this disruption in the flow of experience incites a slightly less romanticized sense of self-realization. Choe’s work can often be viewed as an idealization of what certain items and aspects of nature might, or even should, mean to us, but we are also confronted at times with hostile imagery that does not so much immediately uplift our spirits but jolts us back to reality. Tinkerbell and Two Pumpkins presents us with a much different ambiance than Happy Memory. The foreboding dark background is minimally offset by a pair of dark green pumpkins, the vines of which bear a menacing likeness to monsters from a horror movie. Their reach, indicated by the long vines and widespread leaves that resemble hands, extends far, while the “head” of each gives us no indication of a direction or plan. This is nature, undirected and without intention, despite our attempts to humanize her. In contrast, a visage of Tinkerbell, protected by a magical aura, floats just above a vine in the very middle of the painting. While her intentions are not known, her gaze indicates concern regarding the scene below her. She appears isolated and alone amidst the darkness around her, yet her concern should not be mistaken for a sense of defeat. Recognizing the gravity of the situation, she remains vigilant, focused, and, most of all, illuminated. We sense that she accepts the fact that she is largely alone in whatever plans she might have to address the scene below her, and, with quiet resignation, makes the best of things. Realizing our limitations as human beings, we can approach nature in its most violent and intimidating form not with pessimism, but with awe and respect.

 Choe’s work here is powerfully therapeutic. This type of therapy is not insubstantial; we are not simply viewing a series of colorful, beautiful flowers that might make us temporarily feel better. These works beckon to be approached with a mindset looking for something more. While they may remind us of our shortcomings and insecurities as human beings, particularly in this day and age, they also position us to strategically confront and work through these fears. This process leads not to unjustified optimism or unproductive pessimism, but to a more grounded understanding of one’s place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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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일상 생활의 자동화 된 흐름속에 종종 갇혀 있곤 한다. 이 흐름은 주로 실용성과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즉, 우리는 생산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외부적 요구들에 맞춰 “흘러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를 들어 장을 본다거나, 일을 한다거나, 살고 있는 집을 관리한다던가 하는 실용적이고 의무적인 일들을 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그저 맡기려 하는 경향도 포함한다. 그렇게 흘려 보낸 일상의 결과를 서술하는 것, 그 자체가 거의 진부함이라 할 수 있다 –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근본적 요소들을 점차적으로 위축되도록 용인하고, 또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인해 실존적으로 파멸되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점점 무감각해 지곤 한다.

 예술이 차지하고있는 많은 문화적 역할들 가운데에서도, 우리 자신의 위축된 내면을 매일 새롭게 움트게 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최현주 작가의 이번 전시인 나의 꿈, 나의 기도 (My Dream, My Prayer) 에서 특히 잘 반영되고 있다. 우리는 우선 첫눈에 그녀가 자연 세계에 명백하게 몰두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그녀의 모든 그림들은 어찌보면 자연의 여러 모습들을 주된 시각적 어휘로 사용하되 그 크기와 맥락 및 자연적 기능 측면들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알들은 꽃들로 진화하고, 스파이더 맨은 매화 나무 가지들 속에서 마릴린 먼로를 부끄럽게 구애하며, 그리고 여러 작품에서 보여주었듯이, 전체 에코 커뮤니티들이 공중에 떠 있는 그릇들 안에서 번성하고 있다. 자연에 초점을 맞추되 자연의 순기능과 법칙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이러한 기법은 두가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전환시켜보게 하는 기능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최근에 들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그 변화의 정도가 어디까지 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영역을 제한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심리적 건강도 깊은 영향을 받고 있고, 그런 영향은 또한 상당기간 계속될 것 같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고 종종 느낄 지라도, 우리는 작가의 그림들을 통해 희망의 부재가 반드시 절망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그녀의 여러 그림들은 고립되고 분리된 공간 속에서도 존재하는 삶의 생생하고도 상세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 Happy memory’ 이 그림은 작은 공간에서 신체적 고립이 되었다고 해서 자신을 의미가 없는 흑백의 존재로 강등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인 자그마한 땅에 자리잡은 농부의 집을 묘사한다. 집에서 이어지는 좁은 길들은 어느 특정한 곳으로도 이어져 있지 않다. 어찌보면 이 작은 세상밖으로의 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작은 세계는 자신의 크기에 의해 제약을 받지도 않으며, 그 세계 안에 부족함 없는 활동과 생명력을 담고 있다. 비례에 맞지 않게 거대한 꽃들이 창문에서 솟아나와 자라고, 조경은 섬세하고 흠 잡을 데없이 관리되어 있고, 피크닉 테이블, 원두막 및 야외 평상은 조심스레 준비할 소중한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소소해 보이는 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은 우리가 삶을 헤쳐나가는 일상 속에서 종종 큰 관심없이 지나쳐버리기 일수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무엇이 명백하고 의미있는 가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고 있다.

 둘째, 이러한 일반적 경험의 흐름을 붕괴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약간은 덜 낭만화된 실체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 작가의 그림은 자연의 어떤 요소나 현상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지를, 상당히 이상화 해서 표현한다고 종종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기분을 즉각 북돋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를 현실 속으로 가차없이 돌려놓을 만한 그런 깜짝 놀랄만한 이미지들, 어찌보면 약간은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이미지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팅커벨과 두개의 호박’은 ‘Happy memory’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공포를 자아내는 듯한 어두운 배경속에 한 쌍의 짙은 녹색 호박들이 최소한으로 상쇄되어 묘사되고, 호박 덩굴은 공포 영화의 위협적인 괴물을 연상시킨다. 손을 닮은 긴 덩굴과 넓게 펼쳐진 잎들은 멀리까지 뻗어 있으며 각각의 "머리"는 방향이나 계획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자연을 의미한다 – 그것을 인간화 해보려는 우리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우리의 의도한대로 방향을 잡을수도 없고 또한 자체의 의도도 없다. 대조적으로, 마법의 후광으로 보호된 팅커벨의 모습은 그림 중간에있는 호박줄기 위에 떠 있다. 팅커벨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녀의 시선은 그녀 아래 놓여진 장면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녀는 주변의 어둠 속에서 고립되고 외로워 보이지만, 그녀의 걱정을 패배감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상황의 무게를 인식하면서도, 그녀는 경계하고 집중하며 무엇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 우리는 그녀가 자기 아래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거의 혼자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조용한 관조의 자세로 그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깨달으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을 비관주의가 아닌 경외감과 존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그림들은 여기서 강력한 치유의 매체가 되어준다. 이러한 유형의 치료법은 실질성이 있다. 우리는 단지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 수있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 그림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너머의 것들을 생각해 보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이 그림들은 우리가 가진 약점과 불안감을 상기시킬 수도 있는 반면, 또한 우리가 두려움들에 전략적으로 대처하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자리잡아 주기도 한다. 이 과정은 정당화되지 않은 낙관주의나 비생산적인 비관주의가 아니라, 세상속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보다 더욱 근거 있는 이해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